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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초에 목숨이 달린 현실

기사승인 2017.09.05  15: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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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생활공간은 현대사회에 없어선 안 될 중요한 공간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지하공간이란 ‘지표면 아래의 공간’을 뜻하며, 일부에서는 ‘지표면 하부에 수직 또는 수평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칭한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인 지하철과 이와 연결된 지하보도 공간, 지하상가 그리고 지하 다중이용시설은 우리가 자주 접하는 곳이다. 지하공간은 우리에게 상당한 편리함을 주지만 그만큼의 안전 확보는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실정이다.

 

화재 시 탈출하기 어려운 이유, 지하공간의 특성

우선, 지하공간 화재의 특성을 살펴보면 지하공간에는 수용인원과 유동인원 등 불특정 다수가 출입하는 지하상가, 지하보도, 다중이용시설 등이 자리하고 있어 안전사고 및 화재가 발생할 개연성이 크다. 특히 지하상가의 경우에는 화재발생시 진열되어 있는 의류, 인테리어 소품 등 때문에 불이 쉽게 옮겨 붙는 특성이 있다.

또 지하공간은 지상공간에 비해 공간에 대한 지각률이 매우 낮고, 수평적 구조에 미로성이 강하며 빛의 유입이 없어 화재로 인해 시설물의 전기 공급이 끊어지면 암흑상태가 되어 출구를 찾기가 어려워 피난에 어려움이 있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은 불안함에 어딘지 모를 출구를 향해 움직이는데, 이 혼란에서 많은 사람들이 충돌하고 압사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며, 다수가 지하공간구조에 익숙하지 않아 탈출구를 찾지 못해 패닉이 발생한다. 이와 같은 문제는 대구 지하철 참사와 제주 지하 단란주점 화재에서도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었다.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각 지하보도에는 피난유도등을 설치해 정전 시 유도등을 따라 피난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했다.

그러나 시설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바닥에 붙어 있는 피난유도등이 파손되는 등 사후관리의 부실로 또 다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우리와 유사한 지하구조를 가진 일본은 피난에 대한 대비책으로 유도등과 함께 소리로 피난방향을 알려주는 시스템을 활용중이며, 일부 지하공간에 한해서는 천장을 강화유리로 변경해 화재 시 외부 빛의 유입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처럼 다양한 지하공간의 특성 중 화재 발생 시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다양한 문제점이 거론된 가운데 가장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 부분은 바로 환기시설의 부족이다.

빨대로 숨 쉬듯, 부족한 환기시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지하공간의 화재 발생에 대한 실물화재실험을 실시했다. 지하상가와 유사한 형태로 갖가지 옷을 진열해 두고 화재를 발생시켰다. 실험 시작 후 약 40초가 지나자 건물 내부는 많은 연기가 발생해 앞을 구별하기 힘들었고, 7분이 흐르자 실내온도는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온도인 150도에 이르렀다. 위 실험에서 볼 수 있듯이 지하공간에서 화재 발생 7분 이내에 대피해야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험결과를 두고 수평적 구성인 지하공간에서 7분 이내에 지하공간을 빠져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40초 후 공간을 가득 메우는 연기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높은 온도로 도달하기 전 치명적인 유독가스로 인해 호흡이 곤란해지고 이는 곧 인명피해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화재 발생 시 유독가스는 가스 중독과 흡인성 화상을 일으켜 큰 인명피해를 낳는다. 화재 시 발생하는 유독가스는 건축 재료와 가구, 의류 등 유기가연물이 인화성 물질로 인해 발화돼 발생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유독가스로는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황화수소, 이산화 황 등이 있다. 특히 이 중 포스겐 가스와 시안화수소는 인체에 치명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독가스에 중독되어 폐에 유독가스가 가득 차게 되면 호흡이 불가능해져 의식을 잃은 뒤 사망에 이르게 되며, 흡인성 화상으로 기관지가 붓게 돼 기도가 막힘으로써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지하공간에서 발생한 연기 및 유독가스가 빠져나갈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환기시설의 부족이다. 지하공간은 지표면 아래의 공간으로서 출입구 외에는 지상으로 연결된 산소유입구가 적은 폐쇄적인 공간이기에 연기의 배출구가 한정되어 있다. 산소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에서 화재로 인한 시설물이 불완전 연소되면 연기 및 일산화탄소의 발생량은 더욱 늘어난다. 현재 우리 지하공간에서 환기구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대구 지하철참사 당시 유독가스에 의한 사망률이 60~70%에 이르렀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환기시설에 관한 법규의 문제점

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공기질관리법 5조에 의하면 ‘(실내공기질 유지기준 등) 다중이용시설의 소유자·점유자 또는 관리자 등 관리책임이 있는 자(이하 “소유자등”이라 한다)는 다중이용시설 내부의 쾌적한 공기 질을 유지하기 위한 기준에 맞게 시설을 관리해야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환기설비를 잘 갖춰야 한다는 법 조항이 있지만, 협소한 지하공간에 대한 규제는 미비한 실정이다. 현행법상 배연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건물이란 바닥면적 1,000㎡ 이상의 건물로 규정되어 있다. 근래에 들어 생성되는 대형 지하공간의 규모는 1,000㎡ 이상으로 의무적으로 배연시설을 설치하고 있지만, 그 이하 규모의 건물은 건물주의 자율적인 의지에 맡겨진다. 그러나 사실상 설치의무가 없는 건물주들은 비용부담 때문에 배연시설을 설치하지 않는 것을 당연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환기시설 설치와 함께 주장되는 것으로 제연설비 설치의 의무가 있다. 제연시설은 발생하는 연기를 제어해 피난상의 안전 확보 및 연기에 의한 손실을 방지하도록 하는 것으로서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시행령’ 내 소화활동설비 부분에서 제연설비 설치를 의무화 하고 있다. 또 제연시설은 소방 활동을 위한 시야 확보 및 유독가스 배출을 원활하게 하고, 공기의 흐름을 조정해 화재 연소 경로를 제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규제 역시 근린생활시설·위락시설, 판매시설 및 영업시설, 숙박시설로서 지하층 또는 무창층의 바닥 면적이 1,000㎡ 이상인 곳으로 명시되어 있어 기준 이하 규모의 건물에는 법적인 의무가 없다.

소규모인 영업소들이 지하공간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국내 특성을 고려하면 위 법령들은 현실성이 떨어지며, 결국 지하공간은 무방비 상태로 방치된다.

비합리적인 지하공간에 관한 법 시스템

애매모호하게 통용되고 있는 지하공간이란 개념에 관한 두 가지 문제점을 살펴보자. 먼저, 지하공간과 관련된 법들이 건축법, 도로법, 지하생활공간 공기질관리법, 지하공공 보도시설에 관한 규칙,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과 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공기질관리법 등 여러 관계부처로 흩어져 있어 문제가 제기된다. 전문가 일부는 지하공간을 개발하는데 있어서 건축, 도시계획, 방재측면이 종합적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지하공간은 일반 건축물과 다른 특성을 갖고 재난 전개 양상도 지상공간과 달라 지하공간 시설에 대한 기준을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지하공간을 독립적으로 다루는 법률은 없고 지하공간에 관련된 법이 각각의 관계부처에 의해 나눠져 담당되고 있어, 통일성이 결여되고 안전관리가 비효율적이게 된다.

두 번째로, 법령에 명시된 규제기준이 부적절하다.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 특별법 시행령의 개정에 따라 소화기와 간이스프링클러, 배연시설을 의무설치 하도록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설치대상의 기준이다. 바닥 면적이 관련법상의 기준인 150㎡ 이상인 공간에만 간이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국내의 지하 영업장의 특성상 작은 지하공간이 대부분이며, 개정법이 12월 전에 설치된 업소에까지 소급 적용되지 않아 사실상 별의미가 없는 셈이다. 지난 제주 지하 단란주점 화재의 경우, 지하 영업장의 면적은 150㎡가 되지 않는 협소한 규모로 화재를 초기에 진압할 수 있는 간이스프링클러 의무설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고, 그로 인한 인명피해는 더욱 컸다. 또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출입구 또는 비상구의 통로 폭에 대한 시설기준은 90㎝에 불과해 성인 한명이 빠져나가기도 힘들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결과를 들어 현행 소방 관련법의 제한을 받지 않아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보완 법을 제정하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관련법의 제한을 받지 않는 작은 규모인 지하의 경우 안전을 위해 사업장 허가를 내주면 안 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연물의 총량을 없애는 방향으로 소방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외의 사례를 살펴보면 면적의 크기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법을 적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본 소방청은 소방법 시행령에서 ‘면적이 300㎡ 규모 이상 다중이용시설의 경우 자동화재경보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조항을 갖추고 있었으나, 2007년 효고 현에서 발생한 노래방 화재사건으로 3명이 사망하자 소방법 시행령을 개정해 2008년 10월부터 모든 다중이용시설물에 자동화재경보시설 설치를 의무화 했다.

이밖에도 일본은 자체적인 소방훈련을 실시해 화재에 대해 대비하도록 하고, 자율소방대를 구축해 지하공간의 화재 안전에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지하공간의 안전에 대한 법체계의 확립이 강조됨에 따라, 지난 2011년 3월 ‘초고층 및 지하연계 복합건축물 재난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시행에 들어갔다. 재난관리 정책방향은 다음과 같다.

먼저 특별법에는 재난 발생 시 소방관 등의 진입이 곤란한 문제점을 고려해 수동개방과 연기감지기와의 연동개방, 정전 시 자동개방 등의 규정을 삽입했다. 또한 건물 내 내열성 및 보완성을 강화해 폐가스 누출을 유효하게 감지하고 자동경보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지하공간에 설치하도록 하는 등 가스질식 인명피해를 방지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밖에도 건축법, 주택법, 소방 관련법의 개정도 추진된다. 소방방재청은 건축법에서 피난시설의 피난계단과 특별피난계단, 비상용 승강기에 대해 규정하고 있으나, 피난공간 규정이 미흡하다고 보고 별도의 피난 층과 지하공간의 지하광장 등 피난안전공간 설치를 의무화 할 계획이다. 또 방화구획 및 방화시설의 개선을 위해 면적 중심보다는 지하공간의 용도와 수용인원 등 공간 특성을 고려한 가중치에 따라 세분화 하는 계획이 포함 돼 있다. 아울러 소방 관련법 개정으로 재난 발생 시 혼란과 패닉상태 방지를 위해 피난유도등의 변화와 근거 및 유도등의 표준규격을 마련하고, 지하상가 등 지하공간의 전용 제연설비 설치, 지하연계 복합건축물의 지하음식점을 다중이용업소에 포함하도록 할 방침이다.

현대사회, 특히 면적에 협소한 우리나라에서 지하공간은 경쟁력 있는 공간으로 선호되고 있어 그 개발에 많은 에너지가 쏟아지고 있다. 지하공간의 대규모화·용도복합화에 발맞추어 안전도 역시 수준을 높여가야 한다. 그리고 지하공간은 한번 개발하면 그 모습을 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많은 연구와 개발의 노력으로 허우대뿐인 모래성이 아닌 첫돌부터 자리 맞춰 쌓는 벽돌집이 되어야 한다.

정부는 확실한 안전관리와 법제 운영 그리고 재난예방 및 피해경감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기술개발로 쾌적한 지하공간 환경을 조성하고 재난방지를 미연에 도모하여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전에 기여하여야 할 것이다.

이성현 기자 safe@119news.net

<저작권자 © 주식회사 한국안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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